가수 황정자 생애와 히트곡
- 황정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42세에 요절한 대한민국 신민요/트로트 가수이며, 본명은 황창순이다.
황정자는 1927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태어난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고, 3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유년 시절 8살 때부터 순회극단 무대에서 노래를 할 정도로 음악성이 뛰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황정자의 노래에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13세가 되던 해 황정자는 ‘살랑춘풍’‘살랑 춘풍’을 취입하면서 자기 곡을 가지게 된다. ‘살란충풍’은 조병암이 작사하고 이봉룡이 작곡했다. 집이 가난한 탓도 있고, 노래를 잘해 순회극단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악근단에서 열심히 노래를 한다. 당시 상황으로서 학교에 간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1050년대는 황정자의 전성기였다. 해방 후 1955년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 그 유명한 노래 ‘오동동 타령’을 부른다. 마산의 오동동을 배경으로 한 이 노래를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마음에 활기를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황정자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58년에는 한복남 작곡의 ‘봄바람 님바람’을, 1959년에는 한복남의 또 다른 대 히트곡‘처녀 뱃사공’이 공전의 힛트를 하게 된다.
처녀 뱃사공은 이미자가 불러 그녀의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황정자의 곡이다. 하지만 황정자는 몸에 이상 징후를 느낀다. 후에 장암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노래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1969년 결국 숨을 이어가지 못하고 마흔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다. 좀더 오래 살았으면 많은 노래를 불렀을 것을.
황정자의 마지막 앨범은 <<노랫가락 챠챠챠>이다. 1965년경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챠챠챠’가 ‘차차차’로 수정되어 나온다. 황정자가 전성기를 누린 1950년대 중후반은 전쟁 후 미군이 용산에 거주하면서 대중음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시기다. 단지 미군들에게 둘려주는 음악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다양한 서양음악이 들어와 기존의 트로트와 신민요 등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변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맘보' '트위스트' '차차차' ' 등이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까지 이어갔다.
황정자의 음악적 유산
황정자가 남긴 수많은 곡들은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와 민속적인 가창 스타일로 인해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처녀 뱃사공”은 지금도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특히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한국 대중가요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오동동타령” 역시 마산 지역의 상징적인 곡으로, 지역적 정서를 담아낸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황정자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녀의 노래들은 한국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그녀의 음악은 전후 한국인들의 애환과 감정을 담아냈으며,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꿈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황정자의 대표곡과 히트곡]
살랑춘풍 / 1940년
오동동타령 / 1956년
남원의 봄 사건 / 1958년
봄바람 님바람 /1958년
처녀뱃사공 / 1958/9
저무는 국제시장 (196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