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의 비가 춘우의 노래
- 1967년 7월 18일 화요일, 진주에서 버스회사와 공장 등을 경영하던 박종복(당시 51)의 아들 박춘우가 유괴되었다.
배호가 부르는 <남강의 비가>
가사
황혼의 저녁 노을 물들인 진주 남강
목울 놓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구나
남강아 말해다오 백사장아 말해다오
이 눈물 이 슬픔을 그 누가 아랴
맴도는 남강물에 물새만 운다
나 집에 보내줘요 울부짖는 발버둥도
남은 숙제 못다하고 어디로 갔느냐
남강아 무정하다 백사장도 무정하다
눈물도 강물 따라 넘쳐 흐르고
밤 깊은 진주 남강 노래만 섧다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던 춘우는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 진주교대 앞에서 남성들에게 유괴된다. 이후 범인은 아버지인 박종복에게 돈을 달라는 협박 전화를 하게 된다.
범인들은 9번의 협박편지와 2번의 협박전화를 통해 150만원이란 거금을 요구했다. 당시 서울 반포 22평 아파트가 100만 원 정도였으니 현시가로 하면 거의 5억 정도이다. 이들은 몇 번에 걸쳐 편지와 전화를 하며 수사망을 피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지못해 갈팡질팡하는동안 범인들은 계속하여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경찰에 미리 신고하고 범인들이 요구하는 장소로 돈을 들고 나갔다 하지만 경찰들이 미행한 것을 알고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하여 장소를 바꿔가며 속였다.
박종복은 방송에 나와 눈물로 호소했다.
"서로 이야기하면 해결방법을 찾자 절대로 경찰에 알리지 않고 모든 요구들을 들어 줄테니 춘우를 돌려 달라"
사람들은 서명 운동을 하면 여론을 형성했다. 사건 발생 18일 만에 경찰은 범인을 검거한다. 그들은 박사장이 경영하던 대륙공업사 직공이었던 김경태(21)와 최외석(23)이었다.
이들은 사건 발생 당일인 7월 18일 밤 '나 숙제하러 갈래'하며 춘우군이 울자 수면제를 탄 사이다를 먹인 후 남강 백사장으로 끌고가서 살해했다. 그들은 어린 아이가 어떤 일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데리고 다릴 수가 없어 살해했다고 말했다.
이미자의 <아빠아빠 우리아빠>라는 곡도 이 사건을 다룬 연속극의 주제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