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마도로스 노래
오랜 전 노래를 듣아보면 유심히 많은 단어 중의 하나가 마도로스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배 선원 등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마도로스는 외항선 선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matroos)에서 온 것으로 일본으로 들어와 다시 우리나라로 번역해 들어오면서 일본식 발음을 가져온 것이다. 영어로는 (Able seaman)이다. 자격증이 없는 일반 갑판 선원을 말합니다.
마도로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대를 보면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입니다. 그 이후로는거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외항선 선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또한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던 시대에 외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마도로스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직종이었습니다. 그러나 밀수와 긴밀히 연결되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축적하고 악인들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1964년 5월 30일 개봉한 <마도로스 박>이란 영화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외항 선원들은 성적으로 굶주려 있기 때문에 항구에 들어서면 술과 여자를 가장 먼저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도로스와 사랑이란 단어는 은밀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첫사랑 마도로스> 가사
푸르른 달빛이 파도에 부셔지면파이프에 꿈을 실은 첫사랑 마도로스뎃기에 기대서면 그날 밤이 그립구나 항구마다 정을 두고 떠나온 사나이 그래도 첫사랑 맺은 님은 잊을 길 없네 깨스 등 희미한 부두의 그날 밤에 울며 불며 잡던 이별 뿌리친 마도로스 때 묻은 기름옷에 갈매기가 벗이구나 크라스로 맺은 정에 상처만 남기고 떠나온 첫사랑 아가씨가 나를 울리네
마도로스 대부로 불리는 백야성의 <잘 있거라 부산항>가사에도 잘 드러납니다.
아~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쓰 김도 잘 있어요 미쓰 리도 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마라
아~ 또다시 찾아오마 부산 항구야
마도로스가 항구에 내려 나눈 사랑을 간직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꽤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현대화된 가요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입니다. 심수봉의 이 노래는 선원생활을 하는 남편을 둔 친구가 인천항에서 다시 남편을 인천항에서 떠나보내는 장면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원양어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57년이다. 이후 한국의 원야양어선은 인도양을 비롯하여, 태평양, 대서양 곳곳으로 송출을 나갔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마도로스의 월급이 당시 한국 경제상황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었다.
1962년에 발표된 남일해의 <첫사랑 마도로스>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발견된다. 바로 '파이프에 꿈을 실은'이란 표현이다.
푸르른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면
파이프에 꿈을 실은 첫사랑 마도로스
뱃귀에 기대서면 그날 밤이 그립구나
항구마다 정을 두고 떠나온 사나이
그래도 첫사랑 맺은 님을 잊을 길 없네
깨스등 희미한 부두의 그날 밤에
울며불며 잡던 님을 뿌리친 마도로스
때 묻은 기름옷에 갈매기가 벗이구나
그라스로 맺은 정에 상처만 남기고
떠나온 첫사랑 아가씨가 나를 울리네
[사진출처 고 김성식, 마도로스 파이프 사진]
인천 관련 노래 모음
항구와 관련된 노래를 잘 들어보면 '사랑' '이별' 등이 버무려져 있습니다. 남자는 떠나는 존재, 여자는 보내는 존재입니다. 항구를 소재로 한 노래의 대부분의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은 여성이 남성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 아가씨>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들은 다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천포 아가씨>를 비롯해 <영산포 아가씨> 특히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는 전형적인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항구의 노래이다.
KBS (1992.3.15) 방송 가요무대
항구 도시였던 부산, 충무(통영), 삼천포, 목포 등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노래가 많다. 그런데 기이하게 동해안의 항구들은 이별 노래가 그리 많지 않다. 이 부분도 연구해볼 주제이다.
마도로스가 가사나 제목에 들어간 노래
1933년 / 강석연 / 마도로스의 노래
1936년 / 백석정 / 정열의 마도로스
1936년 / 이난영 / 마도로스의 꿈
1936년 / 김용환(김정구 형) / 마도로스의 노래
1937년 / 설도식 / 마도로스의 노래
1939년 / 백년설 / 마도로스 수기
1939년 / 이규남 / 애상의 마도로스
1940년 / 최규엽 / 마도로스의 발길
1940년 / 이규남 / 마도로스 일기
1940년 / 현정남 / 마도로스 파이프
1941년 / 백년설 / 마도로스 박
1956년 / 박경원 / 이별의 인천항
1957년 / 안다성 / 마도로스 부르스
1959년 / 최갑석 / 마도로스 순정
1960년 / 백야성 / 마도로스 부기
1961년 / 고봉산 / 아메리카 마도로스
1962년 / 김용만 / 부산 마도로스
1963년 / 방태원 / 항구의 바카본드(방랑자라는 뜻)
1964년 / 오기택 / 마도로스 박
1964년 / 남일해 / 첫사랑 마도로스
1966년 / 하춘화 / 아빠는 마도로스
어릴 적 불알친구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 집에 매일 들렀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항상 친구와 엄마뿐이었다. 혹시 아빠가 없나 싶어 묻지 않았다. 2년 후에 한 번 아빠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서야 아버지가 외항선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다. 그 후 3년 뒤엔가 다시 아버지가 돌아왔고 그 후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모아둔 돈으로 마을에서 가장 멋진 집을 지었다. 그런데 불과 2년 되지 않아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도 또 2년 후에 친구에게 형이 한 명 있었는데 다단계에 빠져 대성공? 한 것처럼 살다 어느 순간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해 버렸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날려 너무 괴로워서 그랬다고 한다. 80년대 그 외진 시골에 차를 몰고 와서 성공을 자랑하던 형이었는데... 불과 그 일이 있고 나서 1년 후에 가정은 패가망신한 것이다. 그 후 친구와 그의 어머니는 고향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