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리갈 생애와 노래
1. 장옥조의 생애
미스리갈의 본명은 장옥조(蔣玉祚)다. 장옥조는 1930년대 얼굴없는 가수로 알려졌다. 대구 대봉동에서 출생하여 1930년대 가수로 활동했다. '미스 리갈'이란 특이한 예명을 사용했는데 알려진 바가 없다. 얼굴없는 가수란 별명은 레코드사가 일부러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얼굴을 가려 사진을 내 보냈다고 한다.
리갈 레코드사에서 13장의 음반과 19곡
콜럼비아레코드사의 6종 6곡의 가요로 발표해 총 25곡이 남아 있다.
신혼살림 여인네의 고충을 코믹하게 노래한 <신접살이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후에 오케레코드사에서 이난영이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대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상점에서 일을 했다. 어느날 흥얼 거리는 그녀의 노래를 들은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 직원에게 발탁되어 상경한다.
18세의 나이로 <울어도 울어도>를 리갈레코드사에서 발표한다. 이후 리갈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된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일환으로 장옥주의 눈을 가리게 했다. '미스 리갈'이란 예명으로 알렸다. 이후 <고향아 잘 있거라> <님 무덤 앞에서> <슬픔의 바다>등을 발표한다.
1936 <아리랑>, <두 사람의 사랑은>, <애수의 해변>, <뱃길 천리>, <첫사랑의 꿈>, <십년이 어젠 듯>, <성삼문의 노래>, <사랑의 십자가>, <울기는 누가 울어>, <젊은 날 꿈이여>, <눈물의 밤비>, <울지 말고 가셔요>등 12곡을 리갈, 콜럼비아레코드사 등에서 잇달아 음반으로 발표하여 많은 인기를 얻는다. 장옥조의 목소리는 비음이 들어간 애교스런 목소리다.
1937년 매일신보에 복면의 여가수로 얼굴을 공개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복면가수는 장옥조인 셈이다. 혹시 복면가왕은 장옥조에게서 빌려온 것은 아닌지???
2. 발표곡
1935년
님무덤압헤서 / 작사 유영일 작곡 유일 편곡 유일
슯흠의바다 / 작사 유영일 작곡 김기방 편곡 김기방
반주 : 리-갈관현악단
1936년
우러도우러도 / 작사 유영일 작곡 가구야시 편곡 유일
고향아잘잇거라 / 작사 유영일 작곡 김기방 편곡 김기방
반주 : 리-갈관현악단
사랑의 십자가
성삼문의 노래
1938년
신접사리풍경 / 작사 고마부 작곡 유일 편곡 대촌능장
호반의 밤 / 작사 김익규 작곡 정진규 편곡 대촌능장
반주 : 리-갈관현악단
신접사리풍경(신접살이풍경)
그외 노래들
고향아 잘있거라 / 유일 김기방 김기방
사랑의 십자가 / 유영일 고가마사오 김기방
울기는 누가 울어 / 김운 유일 유일
젊은날의 굼이여 / 이하윤 레이몬드 핫도리 레이몬드 핫도리
울지말고 가세요 / 천우학 고세키 유우지, 레이몬드 핫도리
눈물의 밤비 / 김조, 김기방, 김기방
잘 가거라 마차 / 이노홍, 이삼사 . 천지방웅
청춘 십자로 / 고마부, 손목인, 핫도리 료이치
포구야곡 / 김벽호, 홍수일, 천지방웅
신접살이 풍경 / 고마부, 유일, 오무라 노쇼
호반의 밤 / 김익균, 정진규, 오무라 노쇼
울려주지 마세요 / 이노홍, 유일, 인목타희웅
웃어 주세요 / 김포몽, 이영근, 천지방웅
청춘설계도 / 이노홍. 이삼사, 천지방웅
미스 리갈 <청춘 십자로>
미스리갈 <첫사랑>
[참고자료]
대구문화재단 대구 근·현대 문화예술인물 - 대구 출신 최초가수, 장옥조
다음카페 장옥조 취입곡
네이버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장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