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일선
선우일선(鮮于一扇)은 일제 강점기에 데뷔해 활동한 가수이다. 해방후 북한에서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5일에 태어났으며, 1990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우일선은 평안남도 대동군 륭서면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평양의 기생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33년 포리돌레코드 문예부장 왕평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한다. 1934년 6월 신보에 <꽃을 잡고>를 취입하여 일약 스타 가수가 된다. 그때 당시 유명했던 왕수복과 함게 기성권번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사]
김안서 작사, 이면상 작곡
하늘 하늘 봄바람이
꽃이 피면
다시 못 잊을
지낸 그 옛날지낸 세월 구름이라
잊자건만
잊을 길 없는
설운 이 내 맘
꽃을 따며 놀던 것이
어제련만
그 님은 가고
나만 외로이
선우일선은 성품이 온화하고 목소리가 고와 당시 유행했던 말로는 비단결 같았다고 한다. 가수생활과 기생 생활을 함께했다. 1935년 3월 28일 경성방송곡 라디오에 출현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 당시 이 라디오 중계는 일본 전국에 방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 보도문
선우일선 양은 평양 사람, 신민요 가수로서 전선에 압도적 인기를 한몸에 지닌 방년 17세의 미인, 일본 포리도루 전속
이 방송에서 선우일선은 <꽃을 잡고> <무정세월> <숲 사이 물방아> <그리운 아리랑> <남포의 추억> 을 노래했다.
망향의 가을밤
선우일선은 왕수복과 함께 쌍벽을 이룬 포리돌레코드가 키운 평양기숙학교 출신 최고의 가수이다. 데뷔 직후인 1935년 <삼천리>리가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왕수복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이난여이고 4위는 전옥이다.
1935년 <풍년맞이>를 불렀고, 김주호와 듀엣으로 <상고선> <원앙가> 등을 불렀다. 9월에는 <처녀제> 12월에는 <태평가>가 히트곡이 되었다. 1936년 신출 특별 신보에서 <조선팔경가>를 발표해 그녀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후 <압록강 뱃노래> <바람이 났네> 등을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39년 선우일선은 태평레코드로 옮겨 간다. <주릿대 치마> 를 불렀고, 1940년 1월에 <압록강 뱃노래>를 발표한다. 5월에는 <바람이 났네>를 부른다. 한국전쟁 후 북한에 머물렀으며 평양음악대학 성악하부 민족성악 교원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 만 71세로 사망한다.
히트곡
1934년 6월 <꽃을 잡고>
1934년 4월 <무정세월>
1934년 7월 <숲 사이 물방아> <원포귀범>
1935년 1월 <남포의 추억>
1935년 4월 <그리운 아리랑>
<남포의 추억>은 영화 <바다여 말하라>의 주제가이다.
1935년 5월 <풍년맞이> <상고선>
1935년 7월 <원앙가>
1935년 9월 <처녀제>
1935년 12월 <태평연>
1936년 신춘보 <조선팔경가> (1939년 1월 신보에 <조선팔경>으로 재발매)
1936년 6월 <피리소리> <능수버들>
이후는 태평레코드
1939년 12월 <주릿대 치마>
1940년 1월 <압록강 뗏목노래>
1940년 5월 <첫사랑 푸념> <바람이 났네>
1934년 5월 <그리운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