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인

차중락 생애와 노래

by Ἀμφίων 2021. 6. 14.
반응형

차중락

 


차중락(車重樂)은 1942년 3월 2일 태어나 1968년 11월 10일 요절한 대한민국가수이다.

 

차중락의 생애

 

차중락(車重樂)은 1942년 3월 2일 경성부에서 차준달과 안소순의 8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차중락의 아버지 차준달은 서울시청 소속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이자 건설과 토목 관련 일을 하던 공무원이었다 해방 후 신흥인쇄소를 경영하는 개인사업가가 되었다. 당시 성동구갑부란 소리를 들을 정도록 엄청난 부자였다. 어머니 역시 경성여자고등학교 단거리 선수였다. 

 

차중락의 형제들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첫째는 역도 선수이고, 둘째는 경복고 밴드반장과 ㅇ녀대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넷째는 차중광은 성균관대 야구부 투수이자 그룹 다크 헤어즈의 보컬을 맡았다. 다섯째인 차중용은 양정고의 마라톤 선수이며, 가이즈&돌스에서 활동했다. 목소리와 외모가 차중락과 가장 흡사해서 대역을 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차중라근 경복고등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다. 자주 영화관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동화백화점(현재 센세계백화점) 4층에 있었던 음악감상실에서 팝과 재즈를 접하고 갑자기 빠져들기 시작했다. 

많은 가수 중에서 폴 앵카와 엘비스프레슬리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종종 무대에 올라가 엘비스프레슬리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은 적도 많았다.  이때 차중락의 공연을 보고 반해 버린 사람이 있다. 당시 유명한 가수였던 손목인이었다. 그에게 큰 아들이 있었는데 후랭키 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일본으로 밀항도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또한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기울면서 어려움에 처한다. 

 

거기에 수년간 사귀던 이대에 다니던 애인과도 결별하여 심정으로 아픔 시간을 보낸다. 63년 10월 사촌형인 차도균이 그를 권유하여 키보이스의 리드보컬로 들어가자고 제안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고무장화를 신고 엘비스프레슬리의 모창을 하며 노래한 키보이스의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이때 센세기레코드 사장의 아들이던 강찬호가 실연이 아픔을 겪고 동일한 아픔을 겪은 차중락에게 곡을 선물한다. 그 곡이 바로 엘비스프레슬리의 곡을 편곡해 만든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차중락이 키보이스에서 활동할 당시의 영상

차중락과 키보이스

 

키보이스 그룹

 

 

당시 노래는 먼저 반주를 녹음하고 녹음한 반주를 듣고 가수가 노래하는 2트랙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밴드와 가수가 함께 노래하며 녹음하는 방식을 최초로 시도했다. 음반 발매를 가을이 깊어진 1966년 11월이었다. 노래와 발매된 시기의 가을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음반은 발표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동양방송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인 '사랑의 종말'을 불러 1967년 동양방송(TBC)남자 최고 인기상을 받았다. 

 

1967년 가요대상 10대 가수상(신인상) 받고 성동구 금호동 자택에서 찍은 가수 車重樂 .

노래를 좋아했던 차중락은 키보이스의 리드보컬을 맡았다. 이후 '철없는 아내'를 부르며 독립했다. 바쁜 일정과 활동으로 인해 차중락의 건강은 악화 되었다. 그러나 1968년 11월 10일 서울 동일극장 무대에서 쓰러졌다. 차중락은 곧바로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때 미8군에서 차중락의 노래를 듣고 반한 알렌이란 여성이 차중락을 따라가 간호했다. 하지만 혼수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결국 11월 10일 요절한다. 차중락은 망우리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차중락이 사망하자 <차중락의 새노래>로 발매된 예정이던 음반은 급히 <마지막 남기고간 차중락의 새노래>로 바꾸었고, '낙엽의 눈물'과 '부르고 싶은 이름'을 타이틀 곡으로 선정해 발매했다.인기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별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소녀팬을 이끌었던 차중락의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다. 소녀팬들은 무리를 지어 차중락의 묘를 찾아갔다. 

 

묘비의 글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없고
나뭇잎 때따라 떨어짐에 소리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없다
아, 이 세상 사는자 죽는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없다.

차중락 묘비

1969년 동생인 차중광은 형을 기념하는 앨범을 만들었다. <차중광의 영원한 나의 집>이다. 차중광은 75세로 2020년 8월27일 별세했다. 방광암으로 온 몸에 전이되었다고 한다. 

동생 차중광이 형 차중락을 기념하여 만든 노래

 

차중락의 노래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별처럼 달처럼
밤하늘의 연가
그대는 가고 
나는 혼자다
사랑의 종말
별장지대
사랑아 돌아오라
환상
고향은 다르지만
마음은 울면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가사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 하렸더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차중락 노래모음(9곡)

사랑의 종말
밤 하늘의 연가
그대는 가고
별처럼 달처럼
나는 혼자다
철없는 아내
별장지대
사랑아 돌아오라
환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