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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가요

1970년대 가요 노래 모음

by Ἀμφίων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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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노래 모음

1970년대 노래만을 리스트로 정리했습니다. 1970년대 가수와 연대별 노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970년대 가수와 히트곡>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히트곡이 아니어도 70년대 발표된 모든 노래를 가능한 연대순으로 정리했습니다. 곡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수시로 수정됩니다. 순서는 연도 / 노래 제목 / 가수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자료를 추가적으로 정리하면서 인터넷 상에 떠도는 발표 표기들 상당히 다른 곡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자료를 찾아 정확한 연도를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수정 중입니다. 혹시 틀린 곳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70년대 가요 조용필

 

1970년대 시대적 상황

 

1970년대는 1980대까지 이어지는 군부 독재의 시작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켜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룩한다. 그러나 처음 시작한 그의 순수한 마음은 변질되어 군부독재로 이어진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은 1970년대가 되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포크음악이 서서히 힘을 발휘한다. 후에 7080이란 말은 곧 포크 노래를 뜻한다.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유신체제는 국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활발한 민주주의 정신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70년대 노래를 살펴보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

 

노래의 성향은 남진과 나훈아로 대변되는 트롯과 조용필, 한대수, 김민기 등의 락과 팝이 어울러진 저항 가요가 만들어진 시대였다. 80년대를 수놓은 세시봉은 서서히 고개를 내밀여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성향을 잘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남진과 나훈아의 이야기는 해볼 필요가 있다. 장유정. 서병기의 <한국 대중 음악사 개론>에서 나훈아와 남진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다.

 

"나훈아가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등진 서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면, 남진은 개발독재시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 긍정성을 노래했다. .. 남진은... 권위주의 정권의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희망을 노래했다."

 

 

 

1970년대 음악 - 트로트와 포코의 양대 산맥

1) 60년대 주를 이루고 터전을 잡은 트로트의 발전과 활성화
2) 청년 문화로 대변되는 포크의 출연과 저변확대
3) 록음악의 태동

 

발표 연도 / 제목 / 가수

가장 앞부분에 발표 연도입니다. 하지만 종종 발표 년도와 앨범 년도가 달라 정확한 표기가 어려분 곡들이 많습니다. 발표와 발매가 다른 경우 (  )로 음반발매 년도 표기했음을 밝힙니다.

 

1970년대 유명한 가수들은 나훈아와 남진, 이미자, 패티김,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양병집, 이장희, 조영남, 양희은, 김세환, 박인희, 이연실, 김정호, 신중현 등이다. 

 

1970 / 검은 고양이 네로 / 박혜령
1970 / 고향의 강 / 남상규
1970 / 님은 먼 곳에 / 김추자
1970 / 당신은 철새 / 김부자
1970 / 바보처럼 살았군요 / 김도향  
1970 / 애모의 노래 / 한상일
1970 / 일자상서 / 김부자
1970 / 제비 / 조영남
1970 / 청춘의 꿈 / 김용만
1971 / 그 사람 바보야 / 정훈희
1971 / 기적 소리만 / 배성
1971 / 길 / 최희준
1971 / 남자의 이야기 / 방주연
1971 / 머나먼 고향/ 나훈아


1971 / 불티 / 전영록

1954년 생일 전영록은 가수이며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독특한 가수이다.  배우였던 아버지 황해의 가수 백설의 둘째로 태어났다. 처음 영화배우로 시작했지만 작곡과 작사에도 능해 가수로 활동한다. 한때 비디오 대여점을 시작했으나 적자가 이어지자 폐업했다. 이미영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가졌으나 1997년 이혼한다. 

 

전영록 <불티>


1971 / 아침이슬, 작은 연못 / 양희은  

 

 


1971 / 영시의 이별 / 배호
1971 / 잘했군 잘했어 / 하춘화
1971 / 정 / 방주연
1971 / 정주고 내가 우네 / He5
1971 / 찻집의 고독 / 나훈아


1971 / 파초의 꿈 / 문정선 

가사

낙엽이 나부끼던 어느 날인가
눈보라 밤새일던 어느 날인가
세월의 뒤안길을 서성이면서
한많은 외로움에 울던 그 사람
언젠가 땅을 딛고 일어서겠지
태양의 언덕 위에 꿈을 심으면
파초의 푸른 꿈은 이뤄지겠지

1971 / 파초의 꿈 / 문정선 

 

1971 / 팔도 항구 / 김부자. 은방울 자매

 

1972 / 당신은 철새 / 김부자

1944년생인 김부자는 6-70년대의 대표적 가수이다. 70년대 이후 트로트 시대가 저물어가는 시대에 꽃을 피우 가수이다. 김부자는 1965년 여고생 시절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몇 번 부르고 말 생각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았고 결국 지금까지 가수로 살아간다. 김부자는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를 쳤지만 그것 때문에 오만과 독선의 길로 빠져 미움을 산다. 나중에 지인에게 30억 사기를 당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인기 가수가 된다.

 

1972 / 당신의 마음 / 방주연

1972 / 두고 온 고향 / 이수미

1972 / 마음의 애인 / 정훈희

1972 / 어쩌다가 / 정훈희

 

1972(1975) / 여고시절 / 이수미

1952년생인 이수미는 971년 <때늦은 후회지만>으로 데뷔한다. 1973년 대천해수욕장 피습으로 인해 많은 곤욕을 당한다. 두려운 나머지 자해라고 거짓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기괴한 소문이 돌면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1975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극복하기 위해 낮에는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밤에는 무대에서 활동하는 고초를 겪었다.

 

1973  / 태진아  / 옥경이, 노란 손수건, 동반자

1973 / 고별 / 홍민 

1973 / 비와 나그네 / 이장희

1974  /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1974 / 맨 처음 고백 / 송창식

 

1974(1973) / 미인 / 신중현과 엽전들

 

 

1974 / 벽오동 / 토코리언스

1974 / 사랑을 넘치게 하리 / 홍민

1974 / 석별 / 홍민

 

1974 / 이제는 잊을래 / 이승연

1967년 신세기 레코드를 구경 갔다. 기획자인 이동훈의 눈에 띄어 가수로 발탁된다. <띄울 수 없는 편지>로 데뷔한다. 많은 인기를 누린 것에 비해 그의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문하다.

 

 

1974 / 임과 함께 놀던 곳 / 남상규

1974 / 잊으리 / 이승연

1974 /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1975 / 꼬마인형, 님 떠난 후,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 장덕  

음반 취입은 1978년이다.

장덕과 함께 연관 검색어로는 떠오는 단어는 '음악천재'이다. 그만큼 장덕은 80년대를 주름잡은 가수이자 작사 작곡자이다.. 다양한 악기도 연주가 가능해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장덕의 아버지는 첼리스트였던 장규상이고, 아버지는 서양화가 이숙희다. 오빠였던 장현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장덕은 피아노를 배운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하면서 장현은 아빠 친구 집에,, 장덕은 고모집에 맡겨진다. 불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작곡을 시작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가졌다. 미국으로 유학하며 음악을 배우며 결혼하지만 이혼하게 되고 다시 귀국한다. 안타깝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오빠가 설암에 걸리면서 간호하다 우울증에 빠져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부작용으로 고작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장덕 노래 모음

 

1975 / 돌아와요 부산항에, 여행을 떠나요, 단발머리, 비련, 창밖의 여자  / 조용필 

정식 1집 앨범은 1980년에 발매됩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불렸던 곡을 모아 발표한 앨범이기에 75년에 넣었습니다. 매 곡마다 발표 시기를 정확하게 잡기 힘듭니다.

 

 

1975 / 사랑하니까 / 김준 

1975 / 상아의 노래 / 송창식

1975 / 세월이 가면 / 이수만  

1975 / 애인 / 송창식

1976 / 그 얼굴에 햇살을 / 이용복 

1976 /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1976 / 바다가 육지라면 / 조미미

전남 영암 출신의 가수로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영암 출신의 가수가 정말 많다. 나중에 따로 정리해야 할 듯....

 

 

조미미 가수 생애와 히트곡

조미미 가수 생애와 히트곡 조미미는 대한민국 가수이다. 1965년 데뷔하여 2012년 사망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조미미의 생애 조미미는 1947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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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 사랑의 바닷가 / 방주연 

1976 / 우리 함께 / 논두렁 밭두렁

1977 /  추억 / 현혜정

1977 /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 이광조 

1977 / 나 어떡해 / 샌드 페블즈

1977 / 누구 없소 조율 / 한영애

1977 / 아니 벌써, 너의 의미, 청춘, 나 어떡해 / 산울림 

1977(1982) / 아파트, 황홀한 고백 / 윤수일

아무리 봐도 1977년 표기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어떤 곳에는 1977년도 있어 함께 넣습니다. 제가 보기에 1982년이 정확해 보입니다.

 

1978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옛사랑 / 이문세

1978 / 곡예사의 첫사랑 / 박경애

1978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

산울임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이승윤이 이 노래를 리메크 하면서 깜짝 놀랐다. 원곡보다 더 좋은 것 같다. 하여튼 두 가수의 곡을 모두 들어 보자.

 

 

1978 /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 배철수

1978 / 시인의 마을 / 정태춘

1978 / 희나리 / 구창모

1979 / 그대 생각 / 이정희

1979 / 돌아올 당신 / 김미성

1979 / 비 오는 날의 수채화 / 강인원

1979 / 사랑한 후에 / 전인권

1979 /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 송골매

 

1979 / 연안부두 / 김트리오

그 전에도 인천과 관련된 노래가 있었지만 김트리오가 <연안부두> 발표한 인천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연안부두, 가사, 김트리오, 1979년

연안부두 작사 조운파 작곡 안치행 노래 김트리오 발표 1979년 <연안부두>는 언제부턴가 야구경기 때 인천을 대표하는 응원가가 되었다. 내용은 사랑와 이별을 노래하지만 인천사람들은 인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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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 찻잔 / 노고지리

1979 / 하루 이틀 사흘 / 박경희

1979 / 하얀 민들레 / 진미령

1979 / 행복이란 / 조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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