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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생애와 앨범

이춘근 생애와 앨범 이춘근은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 명문 여고인 인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대를 다녔다. 숙명여대를 다니면서 아마추어 가수로 활동했다. 유심초 멤버인 유시형은 외대 시절 백영규와 숙대의 이춘근과 함께 활동했다. 정식적인 팀은 아니었지만 셋은 꽤 잘했던 탓에 전석환이 진행하는 KBS 라디오 공개 방송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나갔다. 하지만 곧 유시형과 백영규는 입대하게 되고 팀은 해체된다. 이후 이춘근 유심초 멈버였던 유시형의 동생 유의형과 혼성 듀엣을 결성해 활동했다. 하지만 그때 이대 메이퀸이 스토커에 살해 당하는 사건이 터진다. 당시 숙명여대의 퀸이었던 이춘근은 움추려 들 수 밖에 없었고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덕성여대 메이퀸 살인사건] 1975년 유시형은 제대하면서 이종용의 .. 앨범목록 2021. 6. 13.

물레방아 혼성 듀엣 앨법

물레방아 혼성 듀엣 앨범 물레방아 역사 혼성 듀엣은인 물레방아는 백영규와 이춘근이 1977년 결성했다 1981년 해체된 혼성 듀엣이다. 두 사람은 인천이 인연이 되어 만났지만 두 번의 앨범을 내고 성격상의 문제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인천에서 서울외대로 입학에 학교를 다니던 백영규는 제대를 하고 28살 때였다. 이때 숙명여대 체육과 이춘근을 알게 된다. 당시 백영규는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춘근은 숙대에서 '디스코 퀸'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뛰어난 춤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이춘근은 인천에서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인 인일여자고등학교 8회 졸업생이다. 이춘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예체능에 강했다고 한다. 당시 운동장에서 마스게임을 하면 맨 앞에서 기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노래와 무용도 수준급이었.. 앨범목록 2021. 6. 13.

울산 관련 노래

울산 관련 노래 울산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노래들을 정리한 것이다. 울산은 박정희에 의해 개발되지 않았다면 작은 소도시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경상도를 새로운 계발의 전초 기지로 삼았고, 덕분에 울산과 포항, 마산, 창원 등은 거대한 공업도시로 발전한다. 물론 부산도 함께. 특히 울산의 경우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정서들이 울산 관련 노래의 가사들이 스며들어 있다. 김용만의 는 공업도시로 선언된 직후에 노래다. 박정희는 1962년 1월 27일 각령 제403호에 따라 울산을 특정 공업지구로 공포하고 울산을 발전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정희를 떠받치는 이후락이 울산 출신이다. 지역 정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정치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고, 한 인물을 평가하는 것.. 주제별가요/지역노래 2021. 6. 13.

구룡포 처녀, 이미자, 1968년

구룡포 처녀 작사 월견초 작곡 이인권 노래 이미자 발표 1968년 는 이미자가 1968년에 발표한 곡으로 님 떠난 구룡포 항구에서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이미자 구룡포 처녀 가사 파도치는 구룡포에 나 혼자 두고 고래잡이 가신 님은 아니 오시나 징소리 들려오면 행여나 하고 동백꽃 꺾어들고 달려가건만 무정한 구룡포에 내 님은 없네 고래잡이 가신 길이 나를 울리는 두 번 못 올 이별일 줄 누가 알았소 동해라 구룡포에 님은 없어도 연지빛 동백꽃은 피고 지건만 님 오실 뱃길에는 파도만 치네 노래 해설 해방되기 직전인 1941년 태어난 이미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본으로 징용으로 끌려가 힘든 가정에서 자란다. 1959년 을 정식 데뷔하였고, 1966년 는 이미자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공전의 히트곡인.. 60년대가요 2021. 6. 13.

구룡포 사랑, 조미미, 1965년

구룡포 사랑 작사 반야월 작곡 박시춘 노래 조미미 발표 1965년 회사 조미미 구룡포 사랑 가사 동해바다 굽돌이 길 임을 실은 통통선 거울 같은 초록물에 해가 지는데 부산 가신 우리 임 왜 안 오시나 동래 울산 큰애기와 정분이 났나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기다리는 구룡포의 아가씨 -간주중 구룡포에 달이 뜰 때 눈물 맺은 첫사랑 백사장의 해당화도 곱게 피는데 오신다던 그 날짜를 잊으셨나요 통통선의 고동소리 울릴 적마다 등댓불을 바라보고 가슴 조여 애태우는 구룡포의 아가씨 노래 해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 조미미는 이미자와 더불어 한국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가수였다. 놀랍게도 이미자도 68년에 를 불렀다. 아마도 60년대 중후반은 포항이나 구룡포가 뜨는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다. 포항 사람이 아니니 당.. 60년대가요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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