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사랑
작사 반야월
작곡 박시춘
노래 조미미
발표 1965년
회사
가사
동해바다 굽돌이 길 임을 실은 통통선
거울 같은 초록물에 해가 지는데
부산 가신 우리 임 왜 안 오시나
동래 울산 큰애기와 정분이 났나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기다리는
구룡포의 아가씨
-간주중
구룡포에 달이 뜰 때 눈물 맺은 첫사랑
백사장의 해당화도 곱게 피는데
오신다던 그 날짜를 잊으셨나요
통통선의 고동소리 울릴 적마다
등댓불을 바라보고 가슴 조여 애태우는
구룡포의 아가씨
노래 해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 조미미는 이미자와 더불어 한국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가수였다. 놀랍게도 이미자도 68년에 <구룡포 처녀>를 불렀다. 아마도 60년대 중후반은 포항이나 구룡포가 뜨는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다. 포항 사람이 아니니 당시 상황을 알길이 없다. 가사를 보면 '거울 같은 초록물'이란 표현은 수심이 깊은 동해 바다를 뜻한다. 아마도 자신을 떠난 연인의 알 수 없는 마음을 표현은 것이 아닐까 싶다. 1절에서는 '부산'과 '동래 울산'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상당히 모호하다. '동래'는 부산의 옛 이름이라면 '울산'은 어딜가? 그냥 현재의 울산일까?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왜 동래라는 지명을 언급했을까?
현재는 도로가 발달해서 포항과 구룡포는 한 동네지만 당시만 해도 포항과 구룡포는 산을 넘어야 하는 먼 거리였다. 구룡포항은 지금도 작지만 당시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호미곳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첫 항이 구룡포였기에 포항 사람들은 가끔 이곳에서 배를 타고 울산과 부산으로 갔다. 당시 울산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작은 도시였고, 부산은 서울 외에는 가장 큰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뱃길로 부산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