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내 고향
작사 반야월
작곡 손목인
노래 손인호
발표 1964
회사 신세기레코드사
가사
1. 포항만 푸른 물에 갈매기 노래
흰 돛대 남실남실 님 소식인가
송도라 해수욕장 흰 모래 위에
새빨간 포도주로 맺은 첫사랑
포항은 아름다운 내 고향 항구
2. 중립산 허리 위에 꽃 구름 피고
남풍이 불어불어 큰고기 난다
모래가 숨 쉬는 동해라 바다
어부들 북소리가 흥겨웁구나
포항은 산수 좋은 내 고향 항구
이노래는 포항이 포도주를 알리기 위해 64경에 만든 노래이다. 6인치 음반으로 만들어졌다. 자료를 찾다 하도 신기해서 '포항 포도주'로 검색을 하니 기가찰 기사들이 쏟어진다. 실제로 포항에 포도주 공장이 있었다. 포항포도주와 독림양조에서 만들 술이 66년 11월에 적발돼 폐기 처분했다는 뉴스다. 포항에 본사를 둔 포항삼륜포도주 공사에서 만든 포도주가 방부제를 많이 섞어 많은 먹을 경우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1966년 11월 30일 기사
【부산】30일 경남보건당국은 관하 시·군에 국제양조장(부산소재)제품인 도라지위스키와 포항삼륜포도주공사(포항 소재)제품인「포항포도주」를 위생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해 모조리 회수, 폐기 처분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이와 같은 지시는 중앙보건원에서 있은 주류함양 일제 감정 끝에 취해진 조처인데 지난 3월30일 양조된 도라지위스키는 「메타놀」0.2%가 넘었고 또 포항삼륜포도주는 호름알데히드가 검출됨으로써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포항포도주」와 「도라지위스키」
아래의 글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프랑스산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생산에 성공한 포도주]의 일부를 가져온 것임
[포항의 미쯔와포도원은 1935년 전조선주류 품평회에 ‘미쓰와 올드 포도와인’을 출품하여 우등입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각지 주문에 수응할만큼 상품량이 많지 않아서 농장 측은 당황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1935.11.14. 「몰서」) 1939년에는 양조석수가 1500석이 되기도 했다.(『동아일보』1939.11.19. 「경부선(48) 포항행」) 해방 후에도 포항 미쯔와포도원은 계속 포도주를 생산하였는데 『경향신문』1952.01.30. 「포항 포도주, 브란듸」라는 광고를 보면 ‘구 미쯔와(三環) 포항 포도주, 브란듸 드디어(遂) 재등장. 과거 50여년의 전통과 동양제일의 대포도를 자랑하는 진정한 포도주 특히 사교용, 의료용, 가정용, 증답용품으로 꼭 한번 시용해 보십시오. 포항포도원 부산대리점 직매부’라고 하였다. 해방이후 포도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많이 재배되어 1970년대 이후 국산 포도주도 생산되고 있다.]
실제로 포항에는 아직도 포도원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시작된 포도원인 것이다. 이육사의 <청포도>의 배경이 된 곳이 포항의 도구리 마을이다. 그곳은 적포도가 아닌 청포도 단지였다고 한다
[출처: 중앙일보] 영일만 도구리 일대|이육사 시「청포도」의 고장|삼륜 포도원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