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없는 주막
작사 추미림
작곡 이재호
노래 백년설
발표 1940년
곡해설
유차영은 <번지 없는 주막>을 해설하면서 제목을 '강요된 근대화, 조선 백성의 시름>으로 잡았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불려진 이 노래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당시 25세이던 백년설은 민족의 한을 노래에 담았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일제의 지원병제를 독려하는 칠인 군국가요인 <지원병 혈서>를 부르기도 했다. 일제 말기 애국과 친일 사이에서 갈등했던 전형적인 연예인의 모습이다.
당시의 주막은 술을 파는 곳이며 하룻밤 묵고 가는 여인숙과 같았다. 대부분의 주막은 술과 밥을 파는 대신 잠자는 값은 받지 않았다. 한 방에 10명 20명씩 들어가 혼숙을 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당시는 여행이란 개념보다는 보따라 장수가 많았고, 일을 보기 위해 걸어서 여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이 되면 잠시 호롱불을 켜다 이내 꺼야 했다. 사람들은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웠다. 사연 없는 사람들 없으니 저마다 하고픈 이야기는 하룻밤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잠을 자야했고 길을 떠나야 했기에 그들은 나머지 사연을 기약없는 다음으로 미루고 길을 떠났다. <번지 없는 주막>은 당시 이러한 애환을 담고 있다.
가사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석유등 불빛 아래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처량쿠려
새기 손을 걸어놓고 맹세도 했건만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백년설 노래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