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서울
작사 유호
작곡 박시춘
노래 현인
발표 1959년
1. 곡해설
개인적으로 <럭키서울>을 현인 불렀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 현인은 옛날 사람이지만 '럭키서울'은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기 때문에 80년대 중반 이후에 나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 천 번들으면서도 이 노래가 1949년에 발표된 노래라고 예상도 못했다.
비록 한국전쟁이 1950년 6월 25일이 드리워지기는 했지만, 이 때만해도 해방정국기를 보내면서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희망에 부푼 시기이기도 하다. 가사는 서울을 '태양의 거리'로 소개하며, '빌당' '웃음' '럭키' '희망' 등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럭키 서울>을 들여다보면 경남 하동 출신의 삼포 정두수(정두채)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1948년 신문지자였던 유호는 빅시춘과 인연이 있어 그가 설립한 렉키레코드사 문예부장을 겸한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 히트를 치면서 박시춘은 새로운 노래를 준비 중이었다. 당시 <비 내리는 고모령> <서울야곡> <고향 만리> <날랑 18세> <선죽교>가 준비된 상태였다. 아직 곡이 하나 없어 앨범을 출시 못한 상태였다. 이 때 박시춘은 유호에게 작사를 보챈다. 하지만 노래라는 것이 그리 쉽게 되던가. 아무리 골몰해도 곡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곡이 떠오르지 않아 박시춘의 집에서 술만 파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유호가 신문사 편집국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조선호텔 앞 거리에서 외국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 서울에도 이젠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구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 그랬다. 그래 서울이다. 하필 피우던 담배 이름이 '럭키 스트라이크'였다. 럭키서울? 너무 좋았다. 그는 즉흥적으로 지었다. 서울에 관련되 수많은 노래가 있었지만 현인에 의해 불려진 <럭키 서울>은 단연코 서울을 대표하는 최고의 노래이다.
김연자가 부르는 <럭키서울> 역시 트로트의 여제다!
가사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너도 나도 부르자 사랑의 노래
다같이 부르자 건설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서울
서울의 거리는 희망의 거리
희망의 거리에는 사랑이 솟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너도 나도 부르자 사랑의 노래
다같이 부르자 건설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서울
서지오가 부르는 <럭키 서울>
조명섭이 부르는 <럭키 서울>
장윤정이 부르는 <럭키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