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춘몽(花柳春夢)
작사 조명암
작곡 김해송
노래 이화자
발표 1940년
이화자의 <화류춘몽>
<화류 춘몽>은 화류계 여성들의 애달픈 삶을 노래한다. 가사를 보면 꽃다운 나이에 화류계에 들어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젊은 시절 이팔소년을 울려도 보았고, 첫사랑에 울기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낙화신세다. 이제는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 같다. 2절 가사 마지막에는 자신의 직업이 기생이라 할지언정 마음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가사
꽃다운 이팔 소년 울려도 보았으며
철 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버스러진 치는 낙화 신세
마음마저 기생이라 이름이 원수다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나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밤 늦은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손수건 적신 적이 몇 번인고
이름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
빛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았으며
겁나는 세력 앞에 아양도 떨었단다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진
한 떨기 짓밟히운 낙화 신세
마음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화류춘몽>을 노래한 이화자도 한 때 화류계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었다. 곡을 준 김해송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남편이었다. 처음 이곡을 받았을 때 굉장히 주저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혹시나 자신의 과거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김해송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권했다. <화류춘몽>은 남성들로부터 무시 받아온 것에 대한 애환을 담고 있기에 이화자가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화자는 곡을 받고 끊임없이 연습에 연습을 했다. 화류계의 여성들이 가진 애환과 슬픔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이화자를 최고의 민요가수로 칭찬했다고 한다.
이화자 노래모음
당시 가요계의 대부로 불렸던 김용환이 부평에 노내를 정말 잘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흘려들었지만 하도 소문이 무성히 그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몇애서 이화자를 찾아 부평에 도착한다. 그때가 1935년이었다.
이화자가 머물던 곳은 허름하고 초라한 술집이었다. 술집에 들어서니 한 아가씨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태극문양이 그려진 부채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굴은 개기름이 흐르고 추녀였기 때문이다. 괜히 왔다 싶었지만 온 긴에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앉았다.
술을 받고 이화자가 따라 준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그냥 가기가 그래서 이홪에게 노래를 한곡조 청했다. 이화자는 능청스럽게 술을 한 잔 마시더니 목청을 가다듬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얼굴은 정말 아닌데 노래는 기가막히게 잘했던 것이다. 김용환 일행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일행은 이화자에게 감탄을 하면서 내일 서울로 꼭 와달라고 부탁하고 일어선다. 그렇게 이화자는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송가인이 부르는 <화류춘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