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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9

[앨범] 낙화의 한 / 인생의 봄 [앨범] 낙화의 한 / 인생의 봄이 앨범을 1960년대? 발매된 앨범으로 시대레코스다에서 제작되었습니다. 반야월, 월견초 등이 참여하여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수로는 허수정, 고대원, 김은하, 박충남, 박경원 등이 참여앴다. 수록곡 SIDE A낙화의 한노래: 허수정작사: 손오공작곡: 조춘영전선의 꿈노래: 고대원작사: 김영일작곡: 이명희슬픔이 구비치는 항구노래: 김은화작사: 불로초작곡: 김종한이별의 정거장노래: 박충남작사: 김영일작곡: 김종한단풍잎 사랑노래: 김은하작사: 불로초작곡: 송암산청춘 로맨스노래: 박경원작사: 김영일작곡: 전오승SIDE B인생의 봄노래: 고대원작사: 반야월작곡 및 편곡: 최녹령버릴 줄 몰랐오노래: 김은화작사: 김영일작곡: 김종한님 없는 선창노래: 김은화작사: 불로초.. 2024. 9. 29.
반야월, 박창오 생애와 히트곡 반야월반야월(半夜月), 본명 박창오(1917년 7월 6일 ~ 2012년 3월 26일),은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남긴 작사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 수는 약 5,000곡에 이르며,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등의 대표곡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야월은 가수, 작곡가, 그리고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한국인의 애환과 감정을 담아내는 데 탁월했습니다.출생과 초기 생애반야월은 1917년 7월 6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마산방송국과의 연을 통해 음악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는 가수로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으며,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가수 활동을 .. 2024. 9. 29.
산장의 여인,가사,권혜경 산장의 여인 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 노래 권혜경 발표 1957년 곡해설 작사가인 반야월은 마산 출신이다. 어느날 진방남으로 잠시 가수로 활동 할 때 고향인 마산에 내려가 국립마산 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서 위문공연을 한다. 이때 자신의 히트곡인 를 부른다. 이때 뒤편에서 관람하던 한복 차림의 젊은 여인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애처로운 모습에 무슨 사연 때문인지 알아봤다. 그녀는 결핵에 걸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투병하고 있다. 요양소 본 병동 건너편 숲속 산장병동 요양중이었다. [사연과 사진은 다음블로그 '오동동타령'과 마산노래들에서 가져옴] 사연을 듣고나니 마음이 아려왔다. 여인의 심정으로 작사를 해 이재호에게 곡을 부탁했다.이재호도 한 때 몸이 안 좋아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 여.. 2021. 6. 20.
어머니의 사랑,가사,김세일 어머니의 사랑 작사 강일문 작곡 손목인 노래 김세일 발표 1958년 곡해설 당시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 노래는 흔하다. 흔하다고 해서 가치가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의 노래는 없고 모두 어머니의 노래일까? 어버이날도 처음엔 어머니의 날이었다고 한다. 가부장적 정서 속에서 여성인 어머니는 언제나 약자였고 헌신을 요구 받아야 했다. 화자는 '남매 위해 바친 그 목숨'이란 표현을 통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노래한다. 심지어 어머니를 '성려'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당시 유명한 어머니에 대한 노래로는 반양월의 가 있다. 가사 눈보라가 퍼붓더라도 험한 파도 밀려닥쳐도 술잔 위에 흘린 그 청춘, 남매 위해 바친 그 목숨 어머니 굳센 정에 쇠사슬도 풀리었네! 성녀, 성녀!.. 2021. 6. 20.
불효자는 웁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작사 김영일 작곡 이재호 노래 진방남 발표 1940년 8월 곡해설 반야월로 유명한 이전 예명은 진방남이었다. 오래가지 않았지만 한 때 가수로 활동했다. 진방남(반야월)은 서울의 태평레코드사 전속 가수가 되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쉽게 찾아 뵙지 못했다.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이 먼 길을 떠난다고 하자 한 걸음에 달려 왔다고 한다. 당시 진방남은 일본으로 취입을 위해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 일후 진방남의 어머니는 '불효자는 웁니다' 취입 두 시간을 앞다고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진방남은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녹음실에 들어가 흐느껴 울어 녹음을 몇번을 반복해야 했다. 그야말로 노래제목이 자신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사 불러봐도 울어봐도 .. 2021. 6. 18.
구룡포 사랑, 조미미, 1965년 구룡포 사랑 작사 반야월 작곡 박시춘 노래 조미미 발표 1965년 회사 조미미 구룡포 사랑 가사 동해바다 굽돌이 길 임을 실은 통통선 거울 같은 초록물에 해가 지는데 부산 가신 우리 임 왜 안 오시나 동래 울산 큰애기와 정분이 났나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기다리는 구룡포의 아가씨 -간주중 구룡포에 달이 뜰 때 눈물 맺은 첫사랑 백사장의 해당화도 곱게 피는데 오신다던 그 날짜를 잊으셨나요 통통선의 고동소리 울릴 적마다 등댓불을 바라보고 가슴 조여 애태우는 구룡포의 아가씨 노래 해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 조미미는 이미자와 더불어 한국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가수였다. 놀랍게도 이미자도 68년에 를 불렀다. 아마도 60년대 중후반은 포항이나 구룡포가 뜨는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다. 포항 사람이 아니니 당.. 2021. 6. 13.
포항은 내 고향, 손인호, 1964 포항은 내 고향 작사 반야월 작곡 손목인 노래 손인호 발표 1964 회사 신세기레코드사 가사 1. 포항만 푸른 물에 갈매기 노래 흰 돛대 남실남실 님 소식인가 송도라 해수욕장 흰 모래 위에 새빨간 포도주로 맺은 첫사랑 포항은 아름다운 내 고향 항구 2. 중립산 허리 위에 꽃 구름 피고 남풍이 불어불어 큰고기 난다 모래가 숨 쉬는 동해라 바다 어부들 북소리가 흥겨웁구나 포항은 산수 좋은 내 고향 항구 손인호 포항은 내고향 이노래는 포항이 포도주를 알리기 위해 64경에 만든 노래이다. 6인치 음반으로 만들어졌다. 자료를 찾다 하도 신기해서 '포항 포도주'로 검색을 하니 기가찰 기사들이 쏟어진다. 실제로 포항에 포도주 공장이 있었다. 포항포도주와 독림양조에서 만들 술이 66년 11월에 적발돼 폐기 처분했다는 .. 2021. 6. 13.
꽃마차, 진방남, 19442년 꽃마차 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 노래 진방남(반야월의 다른 이름, 반야월의 본명은 박창오) 발표 1942년 이 노래는 원래 서울을 노래한 곡이 아니라 1939년 하얼빈을 노래한 곡이다. 슬프게도 당시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침공할 때로 상당한 경쾌한 분위기를 가졌다. 일본 군국주의적 성향을 다분한 노래다. 해방후 친일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가사를 바꾸었다. 원곡에는 서울이 하루삔으로 되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친일가를 아니다. 당시의 상황을 적절하게 섞은 것이다. 다행히 2010년 6월 간단회 자리에서 자신의 친일행적을 사과했다. 그의 나이 93세 때다. 가사 노래-하자 꽃서-울 춤추는 꽃-서-울 아카시-아 숲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하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걸-이-는 한들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 2021. 5. 23.
영산포 아가씨, 이미자, 1969 영산포 아가씨 작사 반야월 작곡 고봉산 노래 이미자 발표 1965/1969 영산포는 현재의 나주시를 말한다.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마골의 용소에서 발원하여 광주시와 나주를 거쳐 목포에서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주만을 영산포로 부른다. 영산포는 수운이 적당했다. 상류로는 배가 운행하기 힘들었기에 영산포까지가 배들이 운행하기 적합했다. 목포가 개항하면서 동력선이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드나들면서 영산포를 호황을 이루었다. 육지 도로가 썩 좋지 않았던 시절 배는 훌륭한 이동 수단이었다. 덕분에 영산포는 목포와 내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구의 기능은 1960년대로 막을 내린다. 철도와 도로가 점점 발달하면서 포구의 기능이 상실한 탓도 있지만 상류로부터 밀려오는 토.. 20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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