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99 이장희 노래 앨범 이장희 앨범 1집 Young Festival 1집 1972년 10월 (SIDE 1) 친구여 내 마음을 채워주오 그여인 그표정 아빠의 자장가 안녕 (SIDE 2) 그대여 속삭여 줘요 그애와 나랑은 무지개 아무도 모르는 집 밤, 바람, 마음(One of us can't be wrong) 2집 Young Festival 4집 72년 겨울. (SIDE 1) 헝크러진 내머리 애인 마지막 노래 비의 나그네 내사랑 제인(Lady Jane) (SIDE 2) 꿈 이야기 겨울 이야기 그대여 눈을 감아요 73년 6월. 이장희의 '그건 너' 앨범(성음) (side 1) 그건너 촛불을 켜세요 그애와 나랑은 당신은 누군가요 친구여 (side 2) 누구일까 자정이 훨씬 넘었네 애인 비의 나그네 74년 4월 5일. 영화 '별들의 고.. 2021. 6. 12. 그건 너,이장희,1973년 그건 너 작사 작곡 노래 이장희 발표 1973년 회사 이장희 그건 너 가사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보이질 않나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그건 너 2021. 6. 12. 한 잔의 추억, 이장희, 1974년 한 잔의 추억 작사 이장희 작곡 이장희 노래 이장희 발표 1974년 회사 1970년대 초반은 이장희를 빼 놓을 수 없다. 그윽한 목소리와 락과 컨트리가 절묘하게 혼합된 크로스 오버 형태의 음악을 발표했다. 1975년 와 함께 곡과 가사가 퇴폐적이란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당시 금지 당했던 곡들은 자유와 저항정신을 담은 포크 음악들이다. 등이다. 이장희 한 잔의 추억 가사 늦은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 어데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 찬 술잔 위에 어리는 얼굴 마시자 한 잔의 추억 마시자 한 잔의 술 마시자 마셔버리자 기나긴 겨울밤을 함께 지내며 소리없는 흐느낌을 서로 달래며 마주치는 술잔 위에 흐르던 사연 흔들리는 불빛 위에 어리던 모습 그리운.. 2021. 6. 12. 이장희 이장희 이장희는 대한민국 가수이다. 1947년에 태어나 1970년대와 80년대에 활동한 가수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고향은 경기도 수원시 오산면 부산리다. 이장희의 생애 이장희는 해방 후와 한국전쟁 사이인 1947년에 태어났다. 한국 역사에 혼돈의 시기를 보낸 사람이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수원군 오산면 부산리다. 현재는 오산시 부산동이다. 서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한다. 1971년 DJ 이종환의 권유로 가수로 데뷔한다. 그의 노래들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포크 음악을 대변하는 동시에 젊은 이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갔다. 1976년 대마초 혐의로 구속된다. 잠시 반도패선이란 옷가게를 운영하지만 다시 가수로 돌아간다. 1982년에는 미국에서 음반을 내기도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 2021. 6. 12. 난 정말 몰랐었네 난 정말 몰랐었네 작사 작곡 노래 최병걸 발표 1978년 회사 가사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서질 않는 것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가슴에 이 가슴에 심어준 그 사랑이 이다지도 깊은 줄은 난 정말 몰랐었네 아 아 진정 난 몰랐었네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서질 않는 것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가슴에 이 가슴에 심어준 그 사랑이 이다지도 깊은 줄은 난 정말 몰랐었네 아 아 진정 난 몰랐었네 최병걸 진정난 몰랐었네 들고양이가 부르는 진정 난 몰랐었네 2021. 6. 12. 마음 약해서, 들고양이, 1979년 마음 약해서 작사 정두수 작곡 김영광 노래 정주현 발표 1978년 회사 신세계레코드 는 1979년 처음 나왔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걸구룹인 들고양이가 불러 대히트를 친곡이다. 1980년 동일한 제목으로 영화가 되기도 했다. 들고양이는 1971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6인조 혼서 보컬 그룹이다. 데뷔한 후 동남아 순회 공연을 자겼고, 홍콩에서도 활동한다. 1979년 귀국하여 독집앨범을 낸다. 리더성어는 임종임이다. 가사 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사람 혼자남으니 쓸쓸하네요 내마음 허전하네요 생각하면 그얼마나 정다웠던가 나혼자서 길을가면 눈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마음약해서 마음약해서 나는너를 잡지 못했네 *마음약해서 너를 보냈네 매달리던 그사람 나를 잊었나 벌써 잊었나 떠난뒤 소식없네.. 2021. 6. 12. 내가 돌아온 부두, 김두곤, 내가 돌아온 부두 작사 작곡 황하용 노래 김두곤 는 황하용 작곡집에 들어가 있는 곡입니다. 함께 들어 있는 곡입니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앨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안타깝네요. 총각운전수 / 신성남 털털의 청년 / 최진옥 비나리는 교차로 / 유재규 그리움 / 유재규 너만은 알아다오 / 한균근 [이미지는 다음블로그 옹달샘 추억의 옛노래에서 가져왔습니다.] 김두곤이 부르는 가사 아쉬워서 찾아왔다 그리워서 내가왔다 못견디게 괴로워서왔다 임자없는 사나이가 비린내가 풍겨든다고 고향버린 이마음은 아~한사코 울다지쳐 목매이게 찾아왔다 내가 돌아온 이 부두 외로워서 불러봤다 보고파서 불러봤다 아로새긴 그 사연을 못잊어 목마르게 헤매였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고향버린 사나이가 아~ 남몰래 울.. 2021. 6. 12. 해돋는 집, 김상국, 1969년 해돋는 집 작사 작곡 노래 김상국 발표 1969년 이 노래는 미국 밴드인 애니멀스의 'House of the Rising Sun'를 번역해 부른 곡이다. 김상국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우울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영어 '해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은 집장촌을 일컫는 은어다. 가사 상처 입은 장미들이 모여 사는 거리 눈물에 젖은 가슴들이 웃음을 파는 거리 사람들의 비웃음도 자장가 삼아 흩어진 머리 다듬고서 내일을 꿈꾼다오 그 언제나 찾아가리 해 돋는 집으로 꽃피는 마을 내 고향에 어머님 곁으로 *햇빛 없는 뒷골목에 꽃은 시들어 괴로운 사연 넘쳐흘러 설움도 많다오 그러나 밝은 날은 언젠 간 있으리 이런 내 꿈도 피어서 웃을 날 있으리 해설 원곡이나 김상국이 번안한 곡이 모.. 2021. 6. 11. 김상국 김상국 김상국은 1934년 부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가수이다. 2006년 10월 15일 서울 자택에서 사망했다. 생애와 발표곡 김상국은 1934년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난다. 육이오 전쟁 때 미군부대 클럼에서 소년병으로 활동했다고 핟나. 그 때 재즈음악을 접했다고 한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났던 김상국은 1954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데위한다. 1960년대에 소울과 흑인영가 등의 흑인풍 노래를 따라 불렀다. 1964년 루이 암스토롱의 창법을 모방하여 를 발표해 대 히트를 쳤다. 뒤면에는 가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확연히 당시 음악과 다르다. 가사 돈없다 괄세마오 무정한 아가씨 캄캄한 쥐구멍도 볕들 날 있소 모를 건 사람의 팔자라고 하던데 그렇게 쌀쌀할 건 없지 않겠소 돈이란 돌고돌아 없다도 있.. 2021. 6. 11. 왕수복, 생애와 히트곡 왕수복 왕수복은 평양 기생학교 출신 가수이며, 해방 후 북한에 머물며 북한에서 활동했다. 2003년 6월 1일 사망했다. 왕수복(王壽福, 1917~2003)은 1917년 4월 23일 평안남도 강동군 입석면 남경리에서 화전민의 막내로 태어났다. 1928년 3월에 평양 기성(箕城) 권번(券番)의 기생학교(3년제) 입학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1933년 기생 출신으로 창작가요 첫 레코드 취입 가수가 되어, 처음 5월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울지 말아요’, ‘한탄’을 취입하였다. 논란 끝에 폴리돌 레코드사의 전속이 되어 ‘고도의 정한’, ‘인생의 봄’ 취입으로, 당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이듬해 1월 8일 경성방송국(JODK)에서 생방송으로 왕수복의 노래가 일본에 첫 중계 방송되었다. 1935년 잡지.. 2021. 6. 11. 압록강 뱃노래, 가사, 선우일선, 압록강 뱃노래 작사 작곡 노래 선우일선 발표 1940년 1월 가사 뗏목에 몸을 실은 압록강 물 길 키 잡고 가는 데는 신의주라오 물새와 벗을 삼은 외로운 신세 강녘에 뗏목 대고 밤을 보내오 강가서 뛰어 노는 아희들 보니 달 넘은 집 소식이 그리워 지오 서글픈 하소 노래 혼자 부르니 제 김에 목이 메어 눈물 흐르오 눈 속에 벌목하는 동지섣달 띄워라 압록강에 얼음 풀렸소 올해도 한 행보에 뗏목을 타고 압록강 이천 리에 물에서 사오 2021. 6. 11. 선우일선의 생애와 히트곡 선우일선 선우일선(鮮于一扇)은 일제 강점기에 데뷔해 활동한 가수이다. 해방후 북한에서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5일에 태어났으며, 1990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우일선은 평안남도 대동군 륭서면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평양의 기생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33년 포리돌레코드 문예부장 왕평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한다. 1934년 6월 신보에 를 취입하여 일약 스타 가수가 된다. 그때 당시 유명했던 왕수복과 함게 기성권번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사] 김안서 작사, 이면상 작곡 하늘 하늘 봄바람이 꽃이 피면 다시 못 잊을 지낸 그 옛날지낸 세월 구름이라 잊자건만 잊을 길 없는 설운 이 내 맘 꽃을 따며 놀던 것이 어제련만 그 님은 가고 나만.. 2021. 6. 11. 대동강 편지, 가사, 나훈아, 1981년 대동강 편지 작사 월견초 작곡 임종수 노래 나훈아 발표 1981년 노래해설 는 굉장히 독특한 노래다.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전후로는 북한 지명에 들어간 노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북한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노래한 곡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훈가 1981년대 노래했다. 작사한 월견초(본명 서정권)는 주소도 없는 겉봉투에 그리운 이를 그리는 마음을 담아 작사했다고 한다. 대동강은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평양을 가로질러 서해로 흐르는 북한의 유명한 강이다. 남한에 한강이 있다면 북한에는 평양의 대동강이 있다. 나훈우가 부르는 가사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우표없는 편지 속에 한 세월을 묻어놓고 지금은 낯설은 나그네 되어 칠백리 고향길을 찾아왔다고 못본체 마라 못본체 마라 .. 2021. 6. 7. 남인수 생애와 히트곡 남인수 생애와 히트곡 남인수(南仁樹)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대한민국 가수이다. 1918년에 태어났으며 1936년에 데뷔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남인수는 1918년 10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개가하여 진주 강씨 문중에 들어간다. 본명은 최창수(崔昌洙)였으나 어머니의 재가로 강문수(姜文秀)로 바뀐다. 남인수라는 이름은 후에 작사가였던 강사랑이 지어준 예명이다. 남인수의 어린 시절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소년 시절 일본 사아타마 현에 건너가 전구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보통학교만 졸업했고, 음악에 대한 공부는 전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인수는 천성적으로 미성을 가졌고, 음악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가지.. 2021. 5. 31. 한국 민중가요의 역사 한국 민중가요의 역사 이 글은 정경은의 (서정시학)을 저의 자의대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추가 증보한 것임을 밝힙니다. 구분 시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방 전-1950년대 1960년대-1970년대 1980년-1987년 1988년-현재 개인적으로 저자의 구분 시기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따로 구분하고 차라리 1950년대만을 다루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가요사에 대해 전문가가가 아니기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시절과 해항 후까지 다룬 것은 약간 의아합니다. 하여튼 가요사에 대한 부분에 제가 더 공부해서 정리하기로 하고 저는 이 책의 구분법을 그대로 차용합니다. 1. 해방 전-1950년대 해방을 전후로 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 2021. 5. 31.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3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