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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가요47

향기품은 군사우편, 유춘산, 1954년

군사우편 작사 박금호 작곡 나화랑 노래 유춘산 발표 1954년 회사 라이온 레코드사 발표 시기가 약간 모호하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레코드에 취입한 것은 1954년이지만 이 노래는 수년 전부터 불려진 곡이라고 한다. 즉 전쟁의 포화 속에서 불려진 노래인 것이다. 행주치마는 주부들이 일을 할 때 덧입던 옷으로 옷을 보호하고 그릇을 닦기 위한 목적으로 입었다. 하지만 행주산성 사건과 연계되어 조국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헌신을 상징하게 된다. 여기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이란 모티브를 차용한다. 물론 여성이 전장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을 위해 가정을 지키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행주산성의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다. 가사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50년대가요 2021. 4. 28.

백마강, 가사 동영상, 남상규, 1954년

백마강 작사 손로원 작곡 한복남 노래 남상규 발표 1954년 이 노래는 1954년, 그러니까 육이오 전쟁 직후 발표된 노래다. 허민을 알린 곡인 동시에 백제의 마지막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백마강은 우리나라 4대 강인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속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강이다. 백마강은 600년 백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며, 계백 장군의 한을 품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은 국력이 이미 기울여 신라에 의해 정벌을 당할 처지였지만 가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계백 장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660년 신라군이 백제와의 마지막 전투를 시작한다. 아마 당나라만 아니었던 신라는 절대 백제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의자왕도 나쁜 놈이고, 신라는 더 나쁘다. 하.. 50년대가요 2021. 4. 28.

슈샤인 보이, 박단마, 1954(1952)년

슈샤인 보이 작사 이서구 작곡 손목인 발표 1954(1952)년 노래 박단마 이후 바니걸스 회사 스타레코드 1952년 발매된 음반에 박단마에 의해 음반 취입된 곡이다. 그런데 왜 1954년으로 다들 기록하고 있는지 약간 의아하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자료는 1954년 스타레코드사에 발매된 음반에 와 이 기명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자료는 1947년에 처음 불려진 곡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1절에 '피난통'이란 가사를 보면 1952년이 확실해 보인다. 처음 1952년에 발표되었고 다시 1954년에 스타레코드를 통해 재발매된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전쟁 또는 미군정 시절 구두를 신은 사람은 당연히 미국이다. 당시 구두를 신은 대한민국 국민은 희소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구두를 닦.. 50년대가요 2021. 4. 28.

샌프란시스코, 가사, 장세정, 1953년

샌프란시스코 작사 손로원 작곡 박시춘 노래 장세정 회사 1970년대 출생한 나에게 이 노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1953년에 철저히 이국적인 노래가 국내에서 발매되다니... 그것도 전쟁 직후인 1953년에 말이다. 이 노래는 1953년 장세정이 처음 불렀고, 후에 백설희가 다시 부름으로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매력적 보이스를 지닌 백설희의 부른 노래가 대중들에게 더 각인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보다는 이 더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하여튼 하단에 함께 링크했다. 1951년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은 구호 물자를 싣고 병원선 2척을 보낸다. 그것을 보고 지은 노래가 이다. 또 한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장세정이 부른 이다. 샌프란시스코는 LA(나성) 1900년대 도산 안창호가 미국으로 건너.. 50년대가요 2021. 4. 27.

남원의 애수, 김용만, 1953년, 가사 노래

남원의 애수 작사 김부해 작곡 김화영 노래 김용만 회사 아리랑레코드사 남원의 애수 해설 이 노래는 으로 배경으로 만든 노래다. 1953년 김용만은 고작 18세(만)였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레코드에 취입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고 그 해 이곡을 발표한다. 처음 발표할 때 이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후에 김화영 작곡의 폴카송인 와 등을 부르면서 주목을 받게 되면서 더불어 도 덩달아 관심을 받게 된다. 김용만은 이후 1970년대 사랑받는 가수가 된다. 1절 한양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소냐 서낭당 고개 마루 나귀마저 울고 넘네 춘향아 울지 마라 달~래~였~건~만 대장부 가슴속을 울리는 님이여 아~아~어느 때 어느 날짜 함께 즐겨 웃어보나 2절 알상 급제 과거보는 .. 50년대가요 202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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