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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김상국 김상국은 1934년 부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가수이다. 2006년 10월 15일 서울 자택에서 사망했다. 생애와 발표곡 김상국은 1934년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난다. 육이오 전쟁 때 미군부대 클럼에서 소년병으로 활동했다고 핟나. 그 때 재즈음악을 접했다고 한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났던 김상국은 1954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데위한다. 1960년대에 소울과 흑인영가 등의 흑인풍 노래를 따라 불렀다. 1964년 루이 암스토롱의 창법을 모방하여 를 발표해 대 히트를 쳤다. 뒤면에는 가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확연히 당시 음악과 다르다. 가사 돈없다 괄세마오 무정한 아가씨 캄캄한 쥐구멍도 볕들 날 있소 모를 건 사람의 팔자라고 하던데 그렇게 쌀쌀할 건 없지 않겠소 돈이란 돌고돌아 없다도 있.. 음악인 2021. 6. 11.

왕수복, 생애와 히트곡

왕수복 왕수복은 평양 기생학교 출신 가수이며, 해방 후 북한에 머물며 북한에서 활동했다. 2003년 6월 1일 사망했다. 왕수복(王壽福, 1917~2003)은 1917년 4월 23일 평안남도 강동군 입석면 남경리에서 화전민의 막내로 태어났다. 1928년 3월에 평양 기성(箕城) 권번(券番)의 기생학교(3년제) 입학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1933년 기생 출신으로 창작가요 첫 레코드 취입 가수가 되어, 처음 5월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울지 말아요’, ‘한탄’을 취입하였다. 논란 끝에 폴리돌 레코드사의 전속이 되어 ‘고도의 정한’, ‘인생의 봄’ 취입으로, 당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이듬해 1월 8일 경성방송국(JODK)에서 생방송으로 왕수복의 노래가 일본에 첫 중계 방송되었다. 1935년 잡지.. 음악인 2021. 6. 11.

압록강 뱃노래, 가사, 선우일선,

압록강 뱃노래 작사 작곡 노래 선우일선 발표 1940년 1월 가사 뗏목에 몸을 실은 압록강 물 길 키 잡고 가는 데는 신의주라오 물새와 벗을 삼은 외로운 신세 강녘에 뗏목 대고 밤을 보내오 강가서 뛰어 노는 아희들 보니 달 넘은 집 소식이 그리워 지오 서글픈 하소 노래 혼자 부르니 제 김에 목이 메어 눈물 흐르오 눈 속에 벌목하는 동지섣달 띄워라 압록강에 얼음 풀렸소 올해도 한 행보에 뗏목을 타고 압록강 이천 리에 물에서 사오 일정강점기가요 2021. 6. 11.

선우일선의 생애와 히트곡

선우일선 선우일선(鮮于一扇)은 일제 강점기에 데뷔해 활동한 가수이다. 해방후 북한에서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5일에 태어났으며, 1990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우일선은 평안남도 대동군 륭서면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평양의 기생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33년 포리돌레코드 문예부장 왕평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한다. 1934년 6월 신보에 를 취입하여 일약 스타 가수가 된다. 그때 당시 유명했던 왕수복과 함게 기성권번에 소속되어 있었다. [가사] 김안서 작사, 이면상 작곡 하늘 하늘 봄바람이 꽃이 피면 다시 못 잊을 지낸 그 옛날지낸 세월 구름이라 잊자건만 잊을 길 없는 설운 이 내 맘 꽃을 따며 놀던 것이 어제련만 그 님은 가고 나만.. 음악인 2021. 6. 11.

대동강 편지, 가사, 나훈아, 1981년

대동강 편지 작사 월견초 작곡 임종수 노래 나훈아 발표 1981년 노래해설 는 굉장히 독특한 노래다.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전후로는 북한 지명에 들어간 노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북한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노래한 곡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훈가 1981년대 노래했다. 작사한 월견초(본명 서정권)는 주소도 없는 겉봉투에 그리운 이를 그리는 마음을 담아 작사했다고 한다. 대동강은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평양을 가로질러 서해로 흐르는 북한의 유명한 강이다. 남한에 한강이 있다면 북한에는 평양의 대동강이 있다. 나훈우가 부르는 가사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우표없는 편지 속에 한 세월을 묻어놓고 지금은 낯설은 나그네 되어 칠백리 고향길을 찾아왔다고 못본체 마라 못본체 마라 .. 80년대가요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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